[2024년 국내 인디 결산] 현실이 된 밴드 붐과 대규모 지각변동
에디션m
'이런 노래를 뭐라고 하지?'
'이 노래는 어떻게 유행하게 됐을까?'
우린 종종 음악을 들으며 장르, 아티스트, 혹은 노래의 이면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궁금해하죠. 또는 최애곡과 비슷한 노래, 최애 밴드와 비슷한 가수에 목말라하기도 하고요. 하나의 음악을 접하면 다섯 가지의 질문을 하게 되는 독창적 탐구형 리스너를 위해, 멜론과 전문가가 힘을 모아 대중음악 지침서를 발행합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에디션m에서 즐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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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된 밴드 붐과 대규모 지각변동

'밴드 붐은 온다'. 이 말은 지난 몇 년간 음악 팬들이 입에 달고 살던 희망 사항이었다. 아무리 해도 기약 없는 현실에 희망 고문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밴드 붐은 온다'고 믿었다. 2024년은 마침내 '밴드 붐은 왔다'고 해도 좋을 만한 해였다. 실리카겔, 솔루션스, 소음발광, 단편선 순간들, 나상현씨밴드, 극동아시아타이거즈, 한로로, 이승윤 등이 일제히 새 앨범을 내고 록 음악의 부흥을 이끌었고, 록 페스티벌은 물론 단독 공연의 규모까지 확장하며 그야말로 밴드 붐을 이뤘다.
강아솔, 옥상달빛, 브로콜리너마저, 혁오, 사비나앤드론즈 등 인디 음악을 대표하는 굵직한 아티스트가 오랜만에 새 앨범을 내고 컴백하는가 하면, 모허, 산만한시선, 최미루 등 완성도 높은 앨범으로 이름을 알린 신예도 있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데이브레이크부터 실리카겔, 옥상달빛, 10CM, 선우정아 등은 오랫동안 동행한 소속사를 떠나 새출발을 알리며 인디 음악 신의 지형 변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웰메이드 작품으로 풍요로웠던 2024년의 인디 음악을 돌아본다.

그토록 염원했던 '밴드 붐'이란 뭘까. 밴드의 대중적 인기? 밴드 수의 증가? 밴드 앨범의 잦은 발매? 밴드 공연 관객 수의 증가? '밴드 붐'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지표는 고르게 충족한 해였다. 'NO PAIN'(2022)으로 입지를 달리한 실리카겔이 2023년의 끝에 발표한 [POWER ANDRE 99]를 시작으로, 10년 만에 나온 솔루션스의 정규 3집 [N/A], 데뷔 10주년을 맞은 나상현씨밴드의 세 번째 앨범 [CLOVER], 팀의 이름만큼이나 개성 강한 음악을 들려준 극동아시아타이거즈의 첫 앨범 [몽유호원], 특유의 강렬한 에너지로 무장한 소음발광의 [불과 빛], 싱어송라이터 단편선의 새로운 밴드 단편선 순간들의 [음악만세] 등, 고유의 색깔과 짜임새를 두루 갖춘 밴드의 수작이 연이어 발매되며 한 해를 수놓았다. [집]의 한로로, [역성]의 이승윤 등 솔로 로커의 활약도 눈부셨다.
밴드 음악의 뜨거운 인기는 라이브 현장에서 더욱 체감할 수 있었다. 전통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부터 더 글로우 2024,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서울 파크 뮤직 페스티벌 등 각지에서 열린 페스티벌마다 깃발 들고 몸을 부딪치며 '록 놀이'를 즐기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각 아티스트의 단독 공연 규모도 눈에 띄게 커졌다. 잔나비는 10주년 콘서트로 처음 입성한 잠실실내체육관을 나흘간 가득 채웠고, 실리카겔과 더 발룬티어스는 장충체육관에서 만 명 남짓한 관객을 모았다. 터치드는 명화 라이브홀에서 올림픽홀로, 한로로는 KT&G 상상마당에서 Yes24 라이브홀로 각각 몸집을 키우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컴백에 반가움을 더하는 건 단연 뛰어난 작품이다. 2023년 12월, 5년 만에 새 앨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를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을 시작으로 인디 신을 대표하는 아티스트의 웰메이드 컴백이 이어졌다. 정규작으로는 장장 11년 만에 세 번째 앨범 [40]을 공개한 옥상달빛은 1집 [28](2011)을 연상케 하는 제목의 신보에서 40대가 된 이들의 솔직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내 찬사를 받았다.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는 5년 만에 발표한 정규 3집 [너머 (Beyond)]에서 펑크(funk)와 팝, 알앤비와 포크를 유려하게 아우르며 선우정아만의 팝 앨범을 들려줬다.
싱어송라이터 사비나앤드론즈는 8년 만에 3집 [Lasha]를, 밴드 브로콜리너마저는 5년 만에 4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를 내고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와 공감, 희망을 노래했다.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밴드 혁오는 대만 밴드 선셋 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와 의기투합해 4년 만에 새 앨범 [AAA]를 발표하며 건재를 알렸다. 포크와 록을 조화한 김사월의 [디폴트], 슈게이징부터 포크까지 너른 스펙트럼을 펼친 김뜻돌의 [천사 인터뷰] 역시 4년 만에 나온 반가운 작품이었다.

2024년은 특기할 만한 포크 앨범이 많은 해이기도 했다. 인상 깊은 데뷔작을 낸 신예부터 아름다운 컴백 작품을 낸 베테랑까지, 다양한 아티스트가 각자의 언어와 선율, 사운드를 담은 앨범으로 한 해를 빛냈다. 싱그럽고 따뜻한 감수성을 그려내는 남성 듀오 산만한시선, 일렉트로닉과 록 사운드를 활용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최미루는 각각 발표한 데뷔 EP로 마니아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싱어송라이터 이소(e_so)와 조민규로 구성된 포크 듀오 모허는 제주에서 만든 데뷔 앨범 [만화경]에서 아일랜드 민속 음악과 사이키델릭 사운드 등을 활용해 독특하고 신비로운 소리 풍경을 구현하며 호평을 받았고, 싱어송라이터 쓰다(Xeuda)는 사랑에 초점을 맞춘 두 번째 앨범 [사랑의 말을 가르쳐주세요]로 그만의 음악 세계를 확장했다. 4년 만에 새 앨범 [꽃차례]를 발표한 조동희는 특유의 섬세한 노랫말과 아름다운 멜로디로 음악 팬들의 환영을 받았고, 싱어송라이터 다린은 팝의 터치를 가미한 로맨틱한 EP [serenade]로 신선한 매력을 뽐냈다.

밴드 데이브레이크는 2024년 1월 3일, 미스틱스토리와의 전속 계약 소식을 알렸다.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2010년부터 함께한 해피로봇 레코드를 떠난 이들은 지난 12월, 처음으로 외부 프로듀서진과 작업한 EP [SEMICOLON]으로 색다른 감상을 선사하며 미래를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2014년 설립 이래 인디 신의 대표적인 레이블로 자리하고 있던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역시 지난해 전환점을 맞았다. 김수영, 박문치를 시작으로 10CM, 옥상달빛, 선우정아, 요조, 실리카겔, 새소년, 윤지영 등 회사의 주요 아티스트가 계약 만료 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 것이다. 이로써 한동안 큰 변화 없이 지속되던 인디 음악 시장에 대규모 지각 변동이 일어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