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제로는 숨겨진 명곡과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매주 전문위원들이 엄선한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리스너들에게는 숨은 보석 같은 음악을 선물하고, 뮤지션들에게는 다시 날개를 달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Story
7월의 아티스트 이희문
국내에서 가장 바쁜 국악인이 있습니다. 국악인, 쓰고 보니 이 표현은 맞지 않는 것도 같네요. 얼마 전엔 앨범 [요 YO:song]을 발표했고, 오는 7월 '여우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은 이희문을 만났습니다.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정작 그의 꿈은 귀농이라고 하는데요. 무슨 연유인지 함께 들어 보시죠.
Q&A
'트랙제로' 매거진을 보실 멜로너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 민요를 하는 소리꾼 이희문입니다.
Q&A
매번 경기 민요를 하는 소리꾼이라고 자기소개를 하시네요. 고정 인사인가요?
그렇죠, 저는 소리꾼이니까요.
Q&A
말씀을 참 조곤조곤하세요. 무대에 있을 때랑은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어떤 각오가 있어야 그렇게 변신할 수 있나요?
저에게 비주얼의 변화는 되게 중요해요. 태어나길 잘나게 태어난 분들이야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어도 괜찮겠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은 그냥 무대에 올라가면 무대에 자신이 없거든요. (웃음) 거울을 봤을 때 뭔가를 할 수 있는 비주얼이 되어야 해요. 확실히 달라요. 의상을 장착하고 스위치를 하는 거죠.
Q&A
공연 후 모니터링을 하실 거잖아요. 무대 위 이희문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세요?
재밌어요. 외계인 같고. 지구에 놀러 온 외계인! 언젠가 다시 돌아가겠죠.
반짝이 의상이 어울리는 외계인. 그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을 법한 비주얼 작업에 일가견이 있다.
Q&A
외적인 퍼포먼스도 남다르지만 음악 또한 매우 도발적입니다. 전통 음악과 대중음악의 행보에서 처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경기 민요 판에서 이런 음악을 했으면 당연히 싫은 소리를 들었겠지만, 워낙 독립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어요. 한창 현대 무용가 안은미 선생님과 작업할 때는 하는 것마다 무조건 박수와 응원과 칭찬만 받았고요. 그래서 이게 맞는 건가 싶으면서도 자꾸 이런 행보를 걷게 되더라고요. 저희 스승님도 "네가 격을 떨어뜨리지는 않아. 그렇기 때문에 나는 괜찮아."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하는 것이 굉장한 일탈임에도 힘을 실어주신 거죠. 스승님이 괜찮다는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유튜브 영상을 보더라도 생각보다 악플이 없더라고요. (웃음) 저는 전통 음악과 새로운 것을 항상 투 트랙으로 가고 있거든요. 전통의 '기본'을 제대로 하면서 이런 음악을 하니까 반응이 더 괜찮은 것 같아요. 제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 대부분 연령대가 있는데 특히 중년 여성분들이 더욱 지지를 해주시더라고요. 저에게 대리 만족을 하는 것 같았어요. 더 해라, 더 해라, 더 해라… 여자도 아닌 남자가 민요를 이런 식으로 하네? 전통을 제대로 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덧대서 하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도 같고요. 그런 인정이 많은 힘이 됩니다.
Q&A
젊은이들도 선생님 음악을 좋아하는 거 아시죠? 즉각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어야 반응하는 그런 세대 말이에요. 그러니까 결론은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음악이라는 건데,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전통의 DNA라도 있는 걸까요?
있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흥이 매우 많잖아요. 노래 잘하는 사람도 너무 많고요. 제가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남미, 폴란드 분들이 또 그렇게 흥이 많더라고요? 가라오케도 좋아하고 바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하지만 우리나라가 1등입니다.
Q&A
오, 자부심을 갖고 살아야겠네요. 근데 저는 선생님 같은 음악을 소개할 때 고민이 많습니다. 크로스오버나 퓨전은 너무 납작한 수사 같고, 현대화라고 하자니 관점이 다른 것 같고… 어떤 식으로 민요를 풀어내고 있으세요?
우선 전통 악기와 서양 악기를 섞는 건 지양해요. 전통 악기랑 할 때는 전통 악기만, 밴드와 어울릴 때는 서양 악기만 쓰죠. 후자의 경우 제 목소리에서 나오는 소리만이 전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구현하는 테크닉이 잘 들리게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해요. 그래서 예전에 '씽씽'이라는 밴드를 했을 때, 연주가 굉장히 미니멀했어요. 민요의 발성, 테크닉 그러니까 시김새가 잘 들리게 만든 거죠. 노래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힘들어요. 계속 뭔가를 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자들이 앞으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기타 솔로 같은 거 말이에요. 그건 '씽씽'의 연주자 형들이 연주자로서 해볼 건 다 해본 만렙들이라 (웃음) 음악 감독으로서 큰 덩어리를 봤기 때문이에요. 목적이 확실했던 거죠. 이 밴드는 민요를 하는 가수의 보컬이 살아야 하니까 본인의 연주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이 없었어요.
근데 '오방신과'나 다른 밴드와 작업을 했을 때는 연주자의 스킬을 드러내는 부분에서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작업을 했어요. 그 가운데 또 다른 재미를 찾은 거죠. 결론적으로 저는 이런저런 시도를 통해 '민요로 할 수 있는 모든 샘플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보단 할 것이 너무 많은 거예요. 민요가 생각보다 굉장히 미개척된 분야고 저는 그냥 이것저것을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웃음)
Q&A
작업 방식이 궁금해요. 예를 들어 어떤 민요 선율이 있고, 멤버들과 모여서 편곡 논의를 하는 건가요?
리듬부터 시작해요. 왜냐하면 서양의 리듬하고 전통의 리듬이 4박과 3박으로 다르거든요. 4박 안에 어떻게 3박을 녹일 것이냐, 노래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원본을 들려주면서 리듬을 달라고 하죠. 그럼 연주자들이 보사노바를 주기도 하고, 레게를 주기도 하고… 거기에 얹어서 노래를 부르고 좋은 것들을 찾아냅니다. 맞다 싶으면 악기가 들어오고 쌓아가는 거예요.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서 훈련도 많이 했죠. 저한테 길들여진 습(習)이 있는데 그걸 바꾸는 게 일이더라고요.
프렐류드와 작업한 '한국남자'가 공부가 많이 됐어요. 그 친구들은 재즈라 공연할 때 한 번도 똑같이 연주하지 않잖아요! 문제는 음반 작업할 때 저희가 튠이 안 돼요. 민요를 알지 못하면 튜닝을 할 수가 없어요. 잘 될 때까지 녹음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중에서 제일 좋은 소스를 통으로 뽑아내는 거예요.
Q&A
만약 옛날 사람들이 선생님의 민요를 듣는다면 뭐라고 할까요?
뭐… 잘한다고 하겠죠? (웃음) 근데 민요는요, 원래 남자들이 만들었거든요? 남녀 성비를 나누는 것은 안 좋은 일이지만, 우리나라가 과거 남성 중심의 사회였으니까 여성들이 음악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단 말이에요. 그러다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오도 가도 못 하던 관기(官妓)들이 기생 조합을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이 개입하고 권번이 생겼어요. 기생 학교. 시도 가르치고 춤도 가르치고 예술도 가르치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아이돌 기획사죠. 그러면서 민요가 여성들에게 넘어가게 됐어요. 그게 도제식으로 내려오면서 남자 소리꾼들이 사라진 거죠. 100명 중의 한 명? 아니, 거의 없어요.
저는 27살에 본격적으로 소리를 시작했는데 모든 시스템이 여성으로 되어 있는 판에서 소리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이번 '여우락 페스티벌'에도 그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올릴 거예요. '남자라는 이유로'가 타이틀인데, 저랑 동갑인 소리꾼이자 선배인 고금성을 모델로 힘들게 버티고 있는 남자 소리꾼들의 인생을 다룰 거예요. 유희를 섞어서, 그렇지만 감동적으로. 젊은 남자 소리꾼 4명이 콜라보를 할 거고요.
Q&A
여성 중심의 소리판이 왜 어려운 걸까요? 남성 소리꾼에게 힘든 것이 뭔가요?
고음. 전통 악기는 서양 악기처럼 전조가 안 돼요. 그래서 여성의 노래에 맞춰야 하죠. 그러다 보니 음역대에 한계도 있고, 자유자재로 발현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실력을 드러낼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쉽지 않죠. 남자 소리꾼들이 이 정도 하고 있는 것도 정말 멋진 일이에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생겼으니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여자들과 무대에 서면 죽을 맛이었어요. 카스트라토처럼 고음을 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끽해야 두세 명?
Q&A
전통 악기는 전조가 안 돼요?
네, 다 바꿔야 해요. 조율을 바꿔야 해요. 관(管)을 부는 사람들은 관대를 바꿔야 하는데 그럼 운지법이 달라지거든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예전에는 가능하신 분들이 더러 있었는데 요즘에는 없어요. 우리나라 전통 악기는 개량도 잘 안돼요. 그래서 정확히 들어보면 다 불협화음이에요. 관현악이란 걸 할 수가 없는데 그냥 하는 거예요. 악기가 그러하다 보니, 남성의 민요는 어디에도 들어갈 데가 없어요. 다 각자도생하고 각개전투를 하는 거죠. 그래서 힘들어요. 판소리는 창극단이 있고 남자 배우들이 필요하니까 괜찮은데, 경기 민요는 어디에도 없어요. 아무도 받아주는 데도 없고요.
Q&A
실례되는 질문인데, 이렇게 힘든데 왜 하셨어요?
그러니까요(웃음).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도 소리꾼이라 그렇게 만류했겠죠. 하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팬이었고 네, 민요는 공기와 같았어요. 어머니가 이런 걸 하면 안 된다고 자꾸 이야기하시니까 안 되는 거구나 방치하면서 살았을 뿐이에요. 그러다 저희 스승님을 만난 거예요. 해도 된다, 그 말씀에 노래가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가수를 해보겠다고 깔짝대기도 하고 이래저래 방황하면서 뮤직비디오 제작도 했었는데, 뒤늦게 소리를 내게 된 거예요. 되든 안 되든 그냥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다만 사람들에게 경기 민요를 한다고 말해도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그게 그렇게 수치스러웠어요. "나는 경기 민요를 하는 소리꾼 이희문."이라는 이야기를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정도만 돼도 좋겠다는 오기가 생겼죠. 그래서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제 주변 친구들도 제 음악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콘텐츠로 '씽씽'이 알려지니까 달라지더라고요. (웃음) 근데 한 10년 이상 못 보던 친구를 우연히 만났는데, 저보고 패션 테러리스트 같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를 도와줬는데, 디자이너는 생각이 좀 다르더라고요. 한 시간 이상 무대에 서는 사람 입장에선 좀 불편하기도 하고요. 제 패션에는 나름의 변천사가 있어요. 처음에는 진짜 촌스러웠죠. 하지만 모두 저만 생각할 수 있는 저만의 것이잖아요? 되든 안 되든 그냥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죠.
가장 강렬했던 음반 커버 중 하나. 이희문과 프렐류드의 [한국남자 2집]
Q&A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거는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민요 영화! 얼마 전에 드라마 '정년이'도 나왔잖아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저는 주로 저의 이야기를 무대로 만드는데 그로써 저의 결핍을 치유하고 있거든요. 자전 영화를 만들겠다는 건 아니지만 모든 이야기가 소재가 될 수 있겠죠.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너무 과거로 가는 건 싫은데 고민은 좀 되지만요.
Q&A
만약 영화를 만든다면 그것도 도발적인, 파격적인 혹은 섹시한 작품일까요? 기사를 보니까 선생님에 대한 수식어가 많던데, 어떤 걸 가장 좋아하세요?
섹시요. 그거 제가 말하고 다니는 거예요. (웃음) 저는 섹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Q&A
섹시한 게 뭘까요?
그만의 바이브가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탑은 백현진, 너무 섹시해요.
Q&A
뭔지 알 것 같아요.
그런 거예요. 너무 확실하죠. 네, 너무 확실하죠. 못 따라가요.
Q&A
어떤 기사를 보니까 이희문 표 음악을 트래디셔널 K-POP이라고 표현했더라고요. 이게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저도 모르겠어요. 우리나라는 대중이라는 것이 너무 큰 덩어리로 움직이잖아요. 제가 일본 활동을 조금씩 하고 있는데, 힘들지만 그들은 매니악하거든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다양하고 많아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겠죠. 왜냐하면 지금 너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백현진 같은 형이 섹시하게 보이는 거예요. 귀한 사람이죠.
Q&A
대중으로선 취향이 강요당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맞아요, 그게 정확한 표현이에요. 이제 방송을 잘 안 보게 돼요. 유튜브도 요새는 잘 골라봐야 하더라고요. 정말 잘 골라야 해요.
Q&A
앞선 맥락에서, 민요가 한국 대중음악 카테고리에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요,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국악이라는 장르를 하나로 묶어놨어요. 어느 나라를 가도 국악이라는 장르가 없거든요. 다 살아 있어요. 민요면 민요, 판소리면 판소리 하나하나 장르의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의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전부 국악으로 불리게 된 거예요. 그게 좋다고 계속 쓰고 있는 거예요. 버려야 해. 과감히 버리고 장르명을 계속 써야 해요. 경기 민요면 경기 민요, 남도 민요면 남도 민요 이런 식으로요. 명확해져야 그 매력을 집중해서 알 수 있게 되는데, 이름을 없애버린 거잖아요. 얼마나 못된 일이야.
Q&A
선생님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판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다 그래요. 다들 나보고 판소리한다고 그래요. 그럼 맨날 정정해요. "저는 경기 민요를 하는 소리꾼 이희문입니다."라고요. 혼자만의 싸움이랄까요.
Q&A
그래서 앞에서도 명확하게 자기소개를 하신 거군요. 그런데요, 요즘 같은 시대에 민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슬픈 것을 슬프게 표현하지 않고 밝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웃픈 모습이 더 슬프잖아요. 쥐어짜는 것보다 덤덤한 해프닝처럼 말하는 것이 이미 초월로 느껴지죠. 그게 훨씬 더 공감돼요. 그래서 이 시대에 맞는 코드가 아닐까 싶어요.
Q&A
오는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그것을 경험할 수 있겠네요. 감독직을 맡아 엄청 바쁘시겠어요?
네, 7월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여우락 페스티벌'의 소위 감독을 맡게 됐습니다. 사실 어떤 감투라는 게 부담인 것 같아요. 책임감 때문에. 주목이 되는 것도 그렇고 제가 한다고 별반 다를 게 없을 듯한데. (웃음) 아무튼 6~7월은 이 일에 전념하고 있어요. 출연 팀들의 연습 과정을 지켜보기도 하고 비주얼, 특히 의상이나 무대 장치에 대해 물어보는 뮤지션이 많기 때문에 제가 아는 범위에서 서포트를 해드리고 있어요. '요상한 민요 나라'라는 콘셉트를 정했고, 공연을 하는 사람이 재밌고 멋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Q&A
라인업은 어떻게 정하셨어요? 기준이 있을까요?
기준… 처음에 감독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요. '여우락 페스티벌'이 올해가 16회인데 어떤 콘셉트가 있던 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민요로 그간 여러 실험을 해왔으니, 민요로 장르를 국한해서 민요의 재발견과 확장을 해나간다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 나니 여러 장르에 계신 분들이 떠올랐고 대중가요, 뮤지컬, 재즈 여러 분야의 싱어들을 물망에 올렸어요. 물론 섭외가 잘 안된 경우도 많았고요. 일정이 넉넉지 않은 가운데 6~70분의 공연을 '민요'라는 주제로 만들어야 하니 부담이 많이 됐을 거예요.
그 가운데 민요에 관한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어렵게 승낙을 받아냈어요. 예를 들어 최백호 선생님과 함께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 성음으로 민요를 하면 너무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밀어붙였죠. 그리고 그룹 '공명'에 박승원 형님에게 노래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최백호 선생님과 함께요. 원래 피리 전공자인데 말이죠. (웃음) 두 분 다 민요를 노래하는 건 처음이니까 서로 의지하며 가겠다 싶더라고요.
Q&A
선생님이 '여우락 페스티벌' 감독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밌겠다"라는 말이 바로 나왔어요.
재미, 그렇죠. 저는 자신만의 특별한, 이상한 바이브가 있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민요랑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낼까 생각하면 너무 재밌어요. 굉장히 미니멀하면서도 퍼포머가 잘 보이는, 그들의 에너지가 잘 전달되는 무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재밌게 노는 광경을 보면서 관객들도 재밌게 노는, 그런 페스티벌이 되면 좋겠어요. 출연진들에게 가장 당부드린 것도 그거예요. "재미가 있으면 좋겠다. 여기서 아카데미 하실 필요 없다." 사람들이 코로나를 겪으면서 다운이 된 것 같아요. 공연계도 그렇고 들썩거리던 게 조용해졌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떠들썩한 페스티벌이 되면 좋겠어요.
Q&A
가서 춤춰도 돼요?
그럼요! 그건 기본이죠. (웃음)
2025 '여우락 페스티벌' 포스터. 누가 봐도 당장 춤을 춰야 할 분위기다.
Q&A
바쁘신 와중에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요 YO:song]을 소개해 주세요.
'공명'의 멤버였던 임용주 씨랑 작업한 음반이에요. 모듈러 신디사이저로 소리를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가는 친구인데 제가 아까 젊은 남자 소리꾼들 이야기를 했잖아요. 제 주변에 유기견(!)처럼 맴돌던 애들인데 스터디 모임을 하게 됐어요. 근데 이 친구들이 창작 활동은 잘하는데 오히려 전통을 할 기회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전통을 기본으로 공부하자, 무대를 만들자고 시작했는데 제가 더 하고 싶더라고요. (웃음) 그게 동기부여가 됐어요. 전통으로 민요를 부르되, 내 목소리만 올곧게 낼 수 있어야겠다 싶어서 사운드 스케이프를 만드는 임용주 씨와 함께하게 된 거죠. 4월에 공연을 했고 그걸 기록을 하고 싶어서 아카이브 차원의 음반을 만들었고요. 1년에 한 번은 제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에 투자를 하는데 그게 [요 YO:song]이에요.
혹시 음악이 어렵더라도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제가 한복을 갖춰 입었더라도 분명 저만의 바이브가 있거든요. 보이지 않을 뿐이지 제가 그 안에서 계속 춤을 추고 있단 말이죠. 근데 어떤 분이 '이별가'에 TV 방송이 끝날 때처럼 띠- 하는 음이 계속 나오니까 무섭다고 그러는 거야! (웃음) 저는 그 곡이 되게 감동이었거든요. 근데 무섭대. 하지만 그래서 재밌었어요. 다양한 반응이잖아요. 이런 음악을 설득하고 싶은 고집도 있는 것 같아요.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후크 송도 좋지만 전통을 하는 것에 의미가 있으니까요. 제 목소리는 올해 다르고 내년에 다를 것이기 때문에 샘플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사실 음반 내는 거 어려워요. 돈도 그렇고. 그런데 그냥 하는 거예요. 논문 만든다고 생각하고.
Q&A
논문을 만든다, 재밌네요.
그럼요. 논문 하나 쓰는 것과 같아요. 진짜 많은 공부를 하고 조사를 하면서 만드는 거잖아요. 다들 결과만 보니까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드는 건 똑같아요.
Q&A
매번 논문을 쓰면 힘들 텐데 작업물이 상당히 많습니다. 영감과 아이디어가 샘솟는 편이신가요?
그런 것보다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저 뮤지션을 만나면 저런 것, 이 뮤지션을 만나면 이런 것을 하고 싶어요. 같은 민요를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게 되게 재밌고요. 후배들이 선생님이 다 해서 할 게 없다고 투덜대긴 하는데 (웃음) 저는 그 말을 듣고 막 혼냈어요. "내 목소리와 네 목소리가 다른데 내가 먼저 했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바보야." 이러면서요. 만약 '노들강변'이라는 노래를 부른다고 했을 때, 그 곡과 제가 어떤 관계가 되느냐가 곧 음악이 되는 거잖아요. 그 안에서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사람마다 바이브와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했다고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Q&A
올해 음반도 발표하고, 페스티벌도 있고 굉장히 바쁘셨을 텐데, 하반기에는 또 어떤 일정이나 계획이 있을까요?
'오방신과'와 신곡 레코딩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10월에는 시부야에서 콘서트를 할 거예요.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가 반응이 좋아서 작년에도 일본에 갔다 왔거든요. 12월에는 [잡(雜)]을 할 거예요. 경기 12잡가라고 해서 12곡이 있는데 예전에 이태원, 장영규 씨랑 6곡씩 나눠서 음악을 만들었거든요. 그때 장영규 씨랑 작업했던 6곡의 음반 작업을 못 했었는데 이태원 씨가 그걸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12월에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을 합니다.
Q&A
앞으로의 최종 목표는요?
목표 같은 건 없어요. 이렇게 산을 넘고 보면 또 넘고 싶은 산이 보일 뿐이죠.
Q&A
그럼 몇 살까지 노래하실 거예요?
저도 모르겠는데 최백호 선생님 그 나이에도 여전히 섹시하잖아요. 저는 그렇게는 안 될 것 같고 나중에 고추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웃음) 너무 뜬금없죠. 근데 고추장을 좋아하니까 강원도에 가고 싶어요. 그래서 '오방신과' 멤버들한테 제가 귀농을 하면, 너희도 와서 수확도 같이하고 음악도 만들면 어떻겠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민요라는 게 뭡니까. 일을 하면서도 부를 수 있는 노래잖아요. 그걸 유튜브로 담고 그렇게 살면 좋지 않겠냐고 생각했죠. 한 번쯤 고추 농사를 지을 거예요. 고추 따고 고추장을 젓고, 으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