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소울 그룹. 브라운 아이드 소울
유일무이한 소울 그룹. 브라운 아이드 소울
팝계에는 오래 전부터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는 '푸른 눈의 소울', 즉 백인 소울 가수를 뜻하는 말입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과거 소울은 흑인 가수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흑인들의 감성과 창법에 매력을 느껴 그들과 유사하게 노래하는 백인 가수들이 등장했는데요. 이들을 일컬어 부르던 말이 바로 '블루 아이드 소울'이었지요.

한편 오늘 소개하는 팀의 이름은 '브라운 아이드 소울'입니다. 푸른 눈이 서양인을 뜻했다면, 갈색 눈은 동양인을 뜻합니다. 그리고 붙어있는 음악 장르명, 소울. 돌이켜보면 굉장히 직관적인 작명이었습니다. 이들의 태생, 그리고 음악적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적어둔 팀 명이기 때문입니다.
2003년 데뷔해 2025년 정규 5집을 낸 브라운 아이드 소울. 오늘은 이들이 노래한 '소울'을 되돌아봅니다.

2000년대 초반, 소리 소문 없이 등장해 R&B/소울 장르를 가요계 메인스트림에 자리하게 했던 그룹 '브라운 아이즈'를 기억하시나요? 나얼과 윤건, 2인으로 구성된 이 팀은 2008년 깜짝 재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2001년부터 2002년까지의 짧은 활동기를 보인 바 있습니다.
활동기간이 짧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나얼은 코어한 소울 장르를 더 깊이 파서 들려주고 싶어했던 반면, 윤건은 보다 다양한 장르를 통해 대중적 설득력을 담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즉 둘의 음악적 견해 차이가 있던 것인데요. 이에 나얼이 보다 코어한 소울에 집중한 그룹을 결성해 다시 시작한 것이 바로 브라운 아이드 소울입니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중창그룹답게 보다 화려한 음악을 들려줬습니다. 강한 개성을 가진 보컬들이 모여 풍성한 화음과 기교를 보여주는 것이 이들 음악의 특징일 텐데요. 구성원 모두 업계 탑급 보컬 실력을 가진 이들은 필리 소울 같은 소울의 세부 장르부터 대중적인 컨템포러리 R&B까지 흑인음악이 담을 수 있는 모든 디테일을 담아 보여주려 했습니다.

이들의 음악적 방향성은 1집부터 뚜렷했습니다. 벌스마다 멤버별 개성을 뚜렷이 드러내면서도 대중적 멜로디라인을 안배한 '정말 사랑했을까'는 물론, 풍성한 화음의 팀워크가 빛난 'My Everything'과 펑키하면서 도회적인 'Brown City', 마이너한 진행 안에서 각자의 장기를 드러낸 '시계' 등, 각 멤버들은 팀을 위해 하나가 되기도, 각자의 매력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완성도 높은 음악들을 쌓아갔습니다.

1집에서 네 명의 음악적 합을 보여줬다면, 2집에서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냈습니다. 나얼과 정엽, 성훈은 솔로곡을, 영준은 버블 시스터즈의 강현정과의 듀엣을 담으며 각자의 매력 또한 뚜렷하게 보여줬습니다. 이중 간드러지는 가성이 돋보였던 정엽의 솔로곡, 'Nothing Better'가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고요.
종교적 색채를 담은 곡이면서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팬들이 명곡으로 손꼽는 '폭풍속의 주 (The Lord In The Storm) (Feat. Heritage)'도 2집에 담겨 있습니다. 트랙별 개성이 뚜렷하면서 완성도 또한 높았던 덕분에 이들의 디스코그래피 중 2집을 최애로 꼽는 팬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두 장의 앨범으로 팬들의 신뢰를 얻은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이제 보다 장르적 집중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습니다. 이름을 전면에 내 건 만큼, 3집은 대중성뿐 아니라 장르적 집중도까지 모두 챙긴 앨범이었는데요. 보컬은 물론이고 전체적인 사운드의 풍성함까지 더했습니다.
브라스 세션이 돋보인 'Blowin' My Mind'와 'Can't Stop Loving You', 화음의 극한을 보여준 두왑 '그대', 대중적인 멜로디라인을 안배한 '똑같다면'과 '비켜줄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결혼식 축가로 많은 선곡을 받고 있는 'Love Ballad'까지. 앨범의 곡들은 세대를 초월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4집은 오랜 시간 나누어 공개하며 완성한 덕분인지 17첩 반상이라는 큰 볼륨으로 나온 앨범이었습니다. [SOUL COOKE]이라는 이름에서는 소울 장르의 레전드 가수, Sam Cooke에게 존경을 표하는 디테일을 담았습니다.
본작은 1970년대의 낭만이 있는 필라델피아 소울을 앞세우며 흑인음악 특유의 그루브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었던 앨범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앨범 전반에서 가성 가창이 더 돋보이고, 도시적인 세련미가 엿보인 것은 그래서일 겁니다.
이후 싱글과 5집의 반쪽이 선공개되기는 했지만, 2025년 완성본 상태의 5집이 나오기 전까지 완전한 정규앨범 단위로는 2015년에 나온 [SOUL COOKE]이 가장 최근의 앨범이었습니다. 조금 늦더라도, 이들은 매 앨범마다 그들의 영혼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이들이 활동해온 시간 동안 음악 시장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앨범보다는 싱글 발매가 일반적인 포맷이 됐고, 음악은 이지리스닝이 대세가 됐으며, 리메이크 트랙을 만나는 게 일상이 됐고, 앨범커버에는 AI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높은 완성도의 장르 음악으로 가득 채운 풀렝스 앨범, 그리고 공연을 통해 '고전적인 방식으로' 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허투루 음원을 낸 적도 없고,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진지함을 덜어낸 적도 없었죠. 막내 성훈의 탈퇴로 팀은 세 명이 됐지만 브아솔은 여전히 브아솔입니다. [Soul Tricycle]을 한 번만 정주행 해봐도 이들의 여전한 고집은 단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이들은 매 앨범마다 대중적 소구력을 가진 타이틀과 함께 흑인음악의 정수를 담아낸 수록곡들을 안배하며 대중성과 예술성 양쪽을 영리하게 챙겨왔습니다. 덕분에 '브아솔'은 이제 음악계에서 신뢰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요. 올 크리스마스 시즌, 고척돔에서 3일간 진행 예정인 6년 만의 단독공연 예매표가 판매 당일 몇 분 만에 완판됐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여전히 브아솔에게 큰 믿음과 지지를 보내고 있음을 보여준 일화일 겁니다.
세 명의 새 출발을 알리는 5집, [Soul Tricycle] 역시 여전한 신뢰감을 보여줍니다. '브아솔'이라는 브랜드가 담보하는 그 신뢰, 새 앨범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음악에도 명품이 있다면 이런 것일 거라는 느낌이 대번에 들 거예요.